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레이드 러너 (문단 편집) === 각본 === 이 소설의 영화화는 결코 쉽지 않았다. 1973년에 소설의 판권이 팔려 본격적으로 영화화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여러 감독과 각본가의 손을 거치고도 쉽지 않아[* 원작은 종교 관련 내용이 거의 절반이다. 오히려 안드로이드 건이 서브 플롯으로 느껴질 정도여서 각본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의 종교 묘사는 현재 기준으로도 괴짜 무속인 느낌이라 아무리 보이스오버로 심리 묘사가 들어간다고 해도 코미디화 되기 십상이다. 영화는 종교 서사를 통으로 들어내고(광신도인 데커드의 아내도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알파빌에서 여주인공 서사를 가져왔기 때문에 성공한 것.] 거의 표류중인 상태였다. 각본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여러 편이 나왔고 그 중에는 코미디에 가까운 것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영화화는 물 건너가고 판권은 딕에게 회수되었다. 한편 햄튼 팬처는 그럭저럭 조금 팔리는 배우였는데 영화 제작자가 되고자 했다, 그는 친구에게 괜찮은 작품으로 딕의 그 소설을 추천받았고, 이 소설에서 영화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1975년에 팬처는 딕에게 접촉했지만, 당시에 판권은 딕의 손에서 떠나 있던 상태였으며 따라서 팬처는 소설의 판권을 얻을 수가 없었다. 1977년에 비슷한 야망을 가지고 있던 팬처의 친구 브라이언 켈리는 팬처에게 딕의 그 소설을 추천받았고, 그는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화 권리를 2000 달러를 지불하고 샀다. 이 시기에는 판권이 딕에게 돌아와 있었고 이 시기의 딕은 돈을 거절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판권을 획득한 이들은 영국의 유명 제작자였단 마이클 딜리를 끌어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처음에 딜리는 이 소설을 영화화 하는 것을 거절했다. 켈리는 훌륭한 각본으로 딜리를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침 팬처는 원작을 아는데다가 문학과 각본에 취미가 있었다. 켈리는 그런 팬처에게 각본 작업을 할 것을 권유했다. 팬처는 처음에는 제작자를 지향했기에 거절했지만 결국 직접 1년간에 걸쳐서 각본을 쓰게 되었다. 1978년 말에 팬처의 각본을 통해 마이클 딜리를 설득하여 그가 프로듀서로 들어왔지만 감독 선정도 문제였다. 우여곡절 끝에 1980년에 이르러 제작진은 당시 [[에일리언 1]]으로 눈부신 영상 감각을 뽐내던 [[리들리 스콧]]을 감독으로 데려와 계약했다. 팬처의 각본을 읽은 리들리 스콧은 각본이 너무 예술영화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판단했고,[* 예를 들면 각본 중 어떤 단계의 것은 결말에서 죽기 전에 눈을 보고 싶어하던 레이첼을 하얀 눈이 쏟아지는 해안가로 데려가서 그녀의 자살을 돕기 위해 총으로 쏴 죽이고, 절망하는 주인공은 거기서 뒤짚어진채 발버둥하던 거북이가 혼자 힘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고 뭔가를 깨달아 지저분한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좀 더 상업적인 매력을 가지도록 팬처에게 수정을 요구했지만 크게 수정하고 싶지 않았던 팬처가 기싸움을 벌이느라 일을 그만두게 된다. 감독과 프로듀서는 또 다른 신예 각본가인 데이빗 웹 피플스에게 각본을 각색할 것을 주문했다. 피플스는 햄튼 팬처의 각본을 이미 훌륭하며 고칠게 없었다고 평했지만, 어쨌건 자신의 고용된 이유에 따라 리들리의 주문에 맞춰 각본을 계속 바꿔나갔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원작을 읽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물론 이건 리들리 스콧이 인터뷰 등에서 자주 보이는 뻥이나 허세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각본가 피플스에게 소설을 읽지 않고 각본작업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블레이드 러너》를 딕의 소설과 분리된 자신의 창작품으로 보고 있으며, 이 영화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처음 개봉하고 흥행에 참패했을 때는 완전히 딴소리를 했지만 눈감아주자.(...) 물론 리들리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비전이 기여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긴 하다.] 피플스가 구상한 것 중 우주 식민지에서 레플리칸트가 탈출하는 장면 등은 예산 문제로 탈락하기도 했으나 데커드와 로이 배티의 대립과 감정적 교차를 강조하는 등 중요한 변경점을 만들었고, 전반적으로 대사 등을 매끄럽게 다듬는 식으로 발전시켰다. 그런데 결국 각본 작업 말미에 가서는 결국 햄튼 팬처와 데이빗 피플스가 쓴 각본을 짜집기한 버전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이 영화의 각본은 촬영 도중에도 계속 피플스와 팬처에 의해 재작성되었고, 그 밖에 감독의 아이디어와 배우의 의견 등이 반영되어 변형되었다. 한편 자기 대신 피플스가 들어온지도 몰랐던 팬처는 뒤늦게 알고는 촬영장에 돌아와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각본 작업을 이어나가게 된다. 한편 원작자 딕은 수 년간 늘어지던 영화화 작업의 내용을 제대로 통보받지 못하고 있었고, 어느날 우연히 제3자를 통해 영화가 본격적으로 제작 중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원작자인데도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딕은 자신이 별도로 입수한 팬처의 초기 각본이 가진 [[클리셰]]적인 면들을 지적하고 제작진에게 강한 불만을 표했다. 사실 그 당시에 딕이 입수한 각본은 낡았던 것으로, 나중에 제작진이 보여준 피플스와 팬처의 각본을 보고는 내용은 달라도 소설의 핵심을 이해하고 있다며 만족했다. 후에 딕은 개봉 이전 제작팀의 초청으로 컨셉 아트와 특수효과 장면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윽고 딕은 "특수효과가 잘 만든 수준이 아니라 내가 원작을 쓰며 상상했던 분위기 그대로였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었느냐"며 극찬을 퍼부었다.[[https://www.bleedingcool.com/2017/10/10/philip-k-dick-blade-runner/|#]] 또한 비슷한 시기에 블레이드 러너의 캐스트 인터뷰와 제작 중이던 일부 장면을 담은 TV 다큐멘터리 "Hooray for Holleywood"를 보고 감격해,[* 코멘터리에 의하면 딕은 데커드가 조라를 거리에서 쫓는 장면을 개봉 전에 보았고, 평소 도시의 삶을 좋게 보지 않던 딕은 "과잉된 물질에 치인 도시의 삶"을 묘사한 그 장면에 대해서 흡족해 했다고 한다.] '이것이 SF의 미래이며, SF라는 장르에 혁명을 불러올 작품이라 확신한다. SF 장르는 지금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만, '블레이드 러너'가 다시 살려낼 것이다'라며 관련자에게 보낸 감사 편지가 남아 있다.[[https://archive.is/20120604141632/http://www.philipkdick.com/new_letters-laddcompany.html|#]] 편지 내용에 따르면 딕은 '자신의 삶과 작품 세계 전체가 블레이드 러너로서 정당화되었고 완성되었다'이라며 영화에 대해 엄청난 기대감을 품었으며, 블레이드 러너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것이라 예상했다. 비록 딕이 사망한 이후(3월 2일) 개봉(6월 25일)한 이 영화가 그의 기대와 달리 개봉 당시에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지만 블레이드 러너가 이후 SF 장르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